나의 흐린 대상에게
정가은
2023. 12. 05 – 12. 16
한 발 옆으로 물러 나와 고개를 내밀기 전에는 당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보잘것없는 존재다. 그때 비로소 동료들이 갑자기 멈추고 놀란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 놀라움에 휩싸인 침묵 안에, 모국어가 지닌 이해 가능한 단어들이 모두 들어 있다. 당신이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작은 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혹은 거의 가지지 못한 지위의 사람들이 어떤 여분의 구멍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 사람 하나가 숨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구멍 말이다.¹
정가은에게 있어 그림은 도피처이다. 하지만 위의 구절처럼, 그 도피는 회피가 아닌 바라봄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나와 생각이 달랐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 혹은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누군가 하는 걸 옆에서 그저 지켜보는 것 등의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이 상대방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 아닌, 상대방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것임을 그의 그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림은 움직이는 대상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상도 멈춰 있는 한순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의 그림 역시도 ‘적절한 위치’에서 바라본 흐릿한 형태가 정지해 있다. 눈을 찡그려 본 것 같은 이미지나 과도한 플레시를 받아 날아간 이미지 혹은 대상의 그림자만 담긴 이미지는 어떤 것의 불확실한 형태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시선에는 다음이 있다’는 말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가 만드는 불확실한 형태는 작가 자신이 바라본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실루엣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혹여나 텅 빈 실루엣에 다른 모습들이 투영되거나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려도 묵묵히 관찰자의 시선을 지키며 ‘여기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그렇게 그의 그림은 정지한 순간을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닌 ‘바라봄’이라는 행위 자체를 표상하고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림에서 보이는 실루엣들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의 자리를 대신한다. 심지어 그 실루엣은 본인의 그림자인 것도 같다. 그렇게 가끔 자신의 모습이 사라질지라도 너라는 내가 탄생하게 된다. 이제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스스로를 보는 나, 인간관계 속의 나 혹은 언젠가 마주친 사람들. 그것은 정가은이 열어 놓은 작은 틈이자, 가능성의 구멍이다. 이렇게 계속 보기를 자아내는 그림은 결국 누군가를 믿고 싶은 욕망이기도 하다.
1 존 버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열화당, 2017 (김현우 옮김), 30p.
글 김민주
정가은 작가노트
『 한 가지에 몰두했다. 관찰이 좋았고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었다. 적절한 위치를 고민했다. 아주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대상을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문득 다가가고만 싶은 대상을 발견했다. 그저 멀찍이서 들여다봤다. 물리적으로 나는 한곳에서 서서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지만 심리적으로 계속 다가가고 있었다.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과 알게 되는 것들을 부정하면서 대상과 함께 했다. 시간은 미화하거나 왜곡되면서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결국 윤곽만 남겼다. 모든 것을 비웠다. 존재를 이루는 테두리 혹은 그림자의 형태였다. 현실에서 어느 시공간은 존재 자체를 그림자처럼 보이게 했다. 또 약간의 빛만 있어도 그림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날 선 추측과 느긋한 상상이 계속되었다. 그 너머의 내면에서 감정까지 나아갔다.
실루엣은 멈춰 있지만 시선에는 다음이 있다. 일상의 누군가나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바라본다. 여기 빈자리에는 나도 있을 것이고 이를 바라보고 있는 당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 이내 당신은 무관심해질 수 있고 쉽게 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여기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이 알 수 없음과 그로 인한 오묘함에 집중하고 있다.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감정은 그림자가 된다. 그림자들은 유영하고 있다. 』
『 I was engrossed in one thing. The observation was good and there was no reason to like it. I thought about the right location. It was a process of facing the object without being too far or too close. Suddenly, I found an object that I wanted to approach. I just looked from afar. Physically, I was standing in one place and looking at it for a long time, but I was continuing to approach it psychologically. I was with the object, denying the desire to know a little more and the things I knew. Time changed everything as it was glorified or distorted.In the end, only the outline was left. I emptied everything. It was in the form of a border or shadow that made up existence. In reality, a certain space-time made existence look like a shadow. Also, even with a little light, I could face the shadow. The sharp speculation and the laid-back imagination continued. Beyond that, I moved on from the inside to the emotions.The silhouette is still, but the gaze is. They look at it like someone in their daily life or the main character in the story. There will be me in this vacancy and you may be looking at it. Soon you can become indifferent and forget easily but I'm going to stay here. We are focusing on this unknown and the resulting subtlety. Emotions passing by me become shadows. The shadows are swimming. 』
일상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 어디든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그림자이다. 그것은 윤곽이 드러나는 실루엣에 가려진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형상이다. 윤곽이란 사물의 테 두리나 자세하지 않은 대강의 모습이며, 실루엣은 까맣게 칠해진 모양이나 상태를 말한다. 즉 그것을 실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를 가리켜주는 일종의 기호가 될 수 있다. 실체 로부터 떨어질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부터 소외된,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보이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표정 또한 알 수가 없다.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감정을 읽을 수 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저장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의 소용돌이와도 같은 숨겨진 부분이다. 억압된 본능, 개인주의, 이성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묻혀 있는 부분이다. 본인의 작업에 드러나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오로지 실루엣, 즉 윤곽의 안을 검게 칠한 사람의 심리에 집중할 수 있다. 그들의 감정을 추측하게 된다. 일상 속에서 본인은 타인들과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들을 온전히 알고 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깝지만 먼 듯 한 그들이 늘 존재했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에서 표출되는 태도와 내면적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양가감정을 경험 했다. 본인뿐만이 아닌 타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스쳐 지나간 감정에 대한 감각이 내적 심상의 형상으로 남게 되었다.
때로는 행동만으로도 그 감정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대조적으로 작업 속 대상들은 움직임의 측면에서 정적이다. 의도적으로 정적인 움직임을 포착하였다. 대체로 크나큰 움직임이 없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모호한 감정을 나타내기에 적합했다. 흘러가는 순간을 멈추어 그 기록을 다시 바라본다. 실루엣들을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의 시선 에 배치한다. 이는 본인의 상황 속에서 이탈하며 벗어나고 싶은 순간의 심리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대상을 지켜보는 시점이 생기게 된다. 또한 보는 이가 대상과의 실제의 거리감이 생겨 영화의 한 장면처럼 관객이 되어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연상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추측하도록 의도하였다. 이처럼 공간적 거리를 작용시켜 심리적 거리를 연출하였다. 캔버스의 거친 표면에 긴 시간을 집어넣어 두툼한 결의 두께를 만든다. 시간은 물감과 붓을 통해 겹쳐지고 쌓인다. 현상 즉, 보이지 않는 시간이 우연적인 손 의 사건에 힘입어 붓질의 흔적을 통해 가시적 존재로 표면에 나타낸다. 그 피부 위에 축적되고 머무른다. 그 흔적으로 인하여 소멸되는 시간을 응고시킨 자취를 남긴다. 결코 일회성으 로 완결되는 것이 아닌 가능한 무수한의 반복으로 인한 레이어를 통해 깊이를 가진 색의 상태를 만든다.
본인의 작업에서 실루엣은 자신을 발견하고 반영하여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의식의 이면을 드러내는 매개체이다. 서로 다른 욕망이 넘쳐나는 현대의 뒤틀린 일상에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존재를 감각하여 현재를 인식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제작하는 과정에서 행동이 최소화한 형태로 드러나는 감각적 심상을 표현하는 방법은 본인의 과도한 혹은 결단적인 감정을 절제 시켜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확장하여 본인은 물론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의 뜻과는 일치하지 못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 게 된다. 그로 인한 불안함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의미에 위안을 전하며 공감을 이루고자 한다.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면밀히 고려하여 보다 깊고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의 삶과 심리적 기제들을 작업화함으로써 더 많은 가능성으로 소통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나아가고자 한다.
I don't think it's a big deal in my daily life, but there's something I don't miss anywhere. It's the shadow. It is a directly revealed figure hidden by a silhouette that is outlined. The outline is an outline of an object that is not shaped or detailed, and the silhouette refers to a black-painted shape or state. In other words, it cannot be called an entity, but it can be a kind of sign that points to something. Although it cannot be separated from reality, it has a dual character that is alienated from it. It does not directly reveal the visible object, and the facial expression is unknown. I can't even read the emotions of what I'm thinking. Likewise, it can be said that it is an area that stores the most primitive part of ourselves. It's a hidden part like a whirlwind of mind. There is a repressed instinct, individualism, and an 'unacceptable self' that is rationally rejected. These are the deepest buried parts of our existence. The "silouettes" of unknown people revealed in their work become the most important factor.You can only focus on the silhouette, that is, the psychology of the person who painted the inside of the outline black. You get to guess how they feel. In everyday life, I thought that I had a smooth relationship with others, but I wouldn't know them fully. There were always those who seemed close but distant. He felt that the attitudes expressed in communication with others and the inner attitudes were different and experienced his own ambivalence. I thought that not only myself but also modern people living with others had ambivalence. The sense of the emotion that passed by remained as the shape of the inner image.Sometimes you can tell the feeling just by acting. However, in contrast, the objects in the work are static in terms of movement. It intentionally captured static movements. It generally shows the figures without significant movement. The appearance was suitable for expressing ambiguous feelings. Stop the flowing moment and look at the record again. Place the silhouettes at a distance that is neither too close nor too far away. This implies the psychology of the moment when you want to escape from your situation. Therefore, there is a point of view where you watch the object from a step away. In addition, it was intended to make the viewer guess their story by creating a sense of actual distance from the object and being associated with what they look like and think like a scene in a movie. In this way, the spatial distance was applied to create a psychological distance. Put a long time into the rough surface of the canvas to create a thick resolution. Time is layered and stacked through paint and brush. The phenomenon, that is, invisible time, appears on the surface as a visible being through the traces of brush strokes thanks to an accidental hand event. It accumulates and stays on the skin. It leaves a mark that solidified the time that disappears due to the trace. It creates a state of color with depth through layers due to countless iterations possible, which are never one-time completion.In one's work, silhouette is a medium that reveals the backside of consciousness while forming an identity by discovering and reflecting oneself. We hope that it will become a space for contemplation where we can discover our desires and recognize the present by sensing our existence in the twisted daily life of modern times overflowing with different desires. The method of expressing the sensuous image in which the behavior is revealed in a minimized form in the process of production is also a process of controlling one's excessive or decisive emotions. Expanded, I, as well as today's modern people, frequently face situations in which they suppress their emotions and disagree with their will. The resulting anxiety is intended to convey comfort and achieve empathy in the sense that it is a natural process. In the future work, we will consider closely and seek ways to communicate with more possibilities by working on our lives and psychological mechanisms based on deeper and broader experiences